홍콩의 심판: 베스트 보르도 와인 vs 베스트 나파 밸리 와인 파트2

10 April 2017
저자: 지니 조 리

960x0-4샤토 오브리옹 (Château Haut-Brion)

 

방 안의 분위기는 기대로 가득했다. 베스트 보르도 와인과 베스트 나파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하기 위해 모인 아홉 명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고, 훌륭한 와인을 함께 시음하며 우호를 다지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우리 모두는 와인 애호가이자 열광적인 와인 컬렉터였다. 알타야 와인즈(Altaya Wines)의 설립자인 파울로 퐁(Paulo Pong)과 나를 제외하고는 와인 업계와 관련된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블라인드로 시음할 16 개의 보르도 와인과 나파 와인을 함께 선정했기 때문에 모두 훌륭한 와인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없이 많은 시음회에 참석했지만 이번 테이스팅은 내게 결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음한 와인은 모두 환상적이었다. 1989년과 1999년 사이에 생산된 보르도와 나파 와인들은 모두 완벽하게 숙성되어 있었고, 시음이 천천히 진행됐기 때문에 잔 안에서 와인이 피어나는 모든 과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시음에 참석한 사람들과 분위기도 완벽했다.

 

참석자들에게 16 가지 와인 리스트가 배포됐고 (리스트와 와인 시음 순서는 달랐다), 시음 절차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네 가지 와인이 한 세트를 이루어 총 네 개의 세트가 제공됐는데, 한 세트 안에 둘은 보르도, 둘은 나파 와인이었다. 시음 노트와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기록할 수 있도록 테이스팅 시트도 제공됐다. 참석자 중 세 명은 와인에 점수를 매기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참석자들에게 테이스팅 하는 와인이 어떤 와인인지 짐작하지 말자고 제안했지만 막상 와인이 나오자 다들 무슨 와인인지 맞추기 바빴다. 시음이 모두 끝난 뒤에는 시음한 순서대로 작성된 와인 리스트가 배포됐다.

 

첫 세트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음~’,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어떤 와인이 캘리포니아산이고 어떤 와인이 보르도산인지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번 세트에서는 캘리포니아 와인이 우세했다. 첫번째 시음 와인이 캘리포니아산이라는 점에 모두가 동의했고, 이 와인이 이번 세트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점에도 중지가 모아졌다. 다들 캘리포니아 와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점에 일단 나는 안도했다. 첫번째 와인은 1991년산 도미누스(Dominus)였다. 이 와인은 1994년산 르 팽(Le Pin), 1990년산 마고(Margaux), 1993년산 아브루 마드로나 랜치(Abreu Madrona Ranch)를 꺾고 1위에 올랐다. 1990년산 마고는 내게 실망스러웠다. 이전에 맛보았던 깊이와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번째 세트에서는 로쉴드의 1등급 와인 라피트(Lafite)와 무통(Mouton)이 보르도 최고 빈티지인 1996년산으로 제공됐다. 이 와인들의 상대는 나파의 최고 빈티지인 1997년에 생산된 콜긴(Colgin)과 브라이안트(Bryant)였는데, 이 와인들은 프랑스산 경쟁자들과 족히 대적할만 품질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음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라피트 로쉴드였다. 라피트의 맛이 보르도의 다른 와인과 무척 비슷한 맛을 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1989년산 오브리옹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1990년산 라 미씨옹(La Mission) 또는 1996년산 무통(Mouton)이라고 했다. 우리는 라피트가 이다지도 매력적이고 활기차며 완벽한 맛을 보여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시음자의 절반이 이 와인에 100점을 부여했다.

 

세번째 세트에서는 모두가 쉽게 알아맞힌 보르도 와인이 1등을 차지했다. 1990년산 몽로즈(Montrose)와 1990년산 라 미씨옹 둘다 훌륭했다. 하지만 나는 1990년산 몽로즈에서 브레타노미세스 (brettanomyces,나쁜 향을 내는 이스트로 나쁜 향의 수준은 병마다 조금씩 다르다)를 감지했다. 뛰어난 와인이긴 했지만 헛간에서 나는 것 같은 고약한 냄세가 살짝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만큼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한편 라 미씨옹은 훌륭했다! 모두들 이 와인에 99점 또는 100점을 부여했다. 할란(Harlan) 1991년산과 달라 발레 마야(Dalla Valle Maya) 1995년산도 좋았지만 라 미씨옹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 세트는 우아한 아로호 아이슬 빈야드(Araujo Eisele Vineyard) 1995년산, 화려한 페트뤼스(Petrus) 1990년산, 걸출한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 1994년산 등 뛰어난 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1989년산 오브리옹을 맛보자 떠들썩했던 분위기는 갑자기 침묵으로 바뀌었다. 너무나 완벽하고 장엄한 와인 앞에서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입안에서 끊임없이 맴도는 긴 여운을 음미하며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는 미소를 지었으며, 어떤 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치 이 와인이 시간을 멈춰버린 듯했다. 5초가 50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침묵이 끝나자 다들 낮은 목소리로 오브리옹에 대한 감탄을 중얼거렸고, 만장일치로 100점을 부여했다.

 

보르도와 나파의 최고 와인들로 진행된 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간 이 두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알 수 있었다. 나파의 어린 포도나무가 보르도의 우수한 와인에 필적할만큼 뛰어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최상급 와인의 스타일이 탄탄하고 향기로운 것부터 화려하고 풍만한 것까지 얼마나 다양한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지역 모두 그들만이 가진 개성을 한껏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품질면에서는 보르도가 나파보다는 한 수 위인 듯했다. 보르도의 포도나무가 더 늙어서 그럴 수도 있고, 보르도가 나파보다 훨씬 긴 와인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또는 보르도의 기후가 나파에 비해 서늘해서일 수도 있고, 보르도 와인이 섬세해서 디테일과 뉘앙스를 더욱 잘 표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이번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보르도 와인의 품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나파 와인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시음한 와인의 점수는 모두 97점에서 100점 사이였다. 이렇게 훌륭한 와인들 가운데에서 우열을 가리는 기준. 그것은 결국 개인의 취향이 아닐까 싶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부여한 점수를 합산한 결과에 따라 순위대로 시음한 와인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1989년산 샤토 오브리옹: 600점

2   1990년산 라 미씨옹 오브리옹: 597점

3   1996년산 샤토 라피트 로쉴드: 595점

4   1990년산 페트뤼스: 595점

5   1990년산 샤토 몽로즈: 587점

6   1994년산 스크리밍 이글: 582점

7   1997년산 콜긴 허브 램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 578점

8   1997년산 브라이안트 패밀리 빈야드 프로프리터 그로운 카베르네 소비뇽: 577점

9   1995년산 아로호 아이슬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 575점

10  1991년산 도미누스 에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 574점

11  1995년산 달라 발레 마야: 573점

12  1991년산 할란: 573점

13  1994년산 르 팽: 568점

14  1993년산 아브루 마드로나 랜치: 566점

15  1996년산 샤토 무통 로쉴드: 565점

16  1990년산 샤토 마고: 560점

 

이미지 제공: Caroline Blumberg/Bloomberg News